보성 전통차 농업시스템

보성 전통차 농업시스템

보성전통차 농업시스템

보성차 역사

보성차는

서기 369년 보성(당시 복홀군)이 마한에서 백제로 통합되면서 차를 이용했다는 보성군사의 기록으로 보아 1600년 전부터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가을평소(장흥도호부 6향, 13소 중)신증동국여지승람
    가을평소(장흥도호부 6향, 13소 중)
  • 세종실리지리지 보성, 포곡소, <약재>차세종실리지리지
    보성, 포곡소, <약재>차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0권 전라도 보성군편과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보성지역은 예로부터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차를 만들어 음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문덕면 대원사, 벌교 징광사지 주변 등 보성군 전역에 야생 차나무 군락지가 있다는 것, 득량 송곡 다전(茶田)마을, 겸백 다동마을, 복내 차밭 등 아직도 마을지명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기록이 오랜 역사를 뒷받침하고 있다.

차는 배앓이를 낫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키며, 통증을 사라지게 하는 등의 효과가 있어 민간에서는 오랫동안 약으로 사용하였다. 채집하던 차를 농민구제를 위해 양반이 구매하기 시작하며 차소비가 늘고 좀 더 좋은 차를 많이 생산하기 위해 본격적인 차나무 식재로 이어지며 차농업이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성차의 변천사는 뇌원차(떡차) → 혼합차 → 홍차 → 녹차 → 블랜딩차로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다. 뇌원차는 우리나라 토산차에 최초로 붙은 이름으로 고려시대 시무 28조를 올린 최승로가 63세로 죽자(989) 왕이 유족에게 뇌원차 200각 대차 10근을 보냈다는 기록을 통해 우리나라 토산차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자 차는 사대부의 음료이자 민간의 약으로 사용되었고 떡차와 더불어 발효차의 수요가 증가하였다.

이후 근현대로 가면서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발효 정도와 색상의 정도를 나눠 혼합차, 홍차, 녹차, 블렌딩차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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