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우리나라 다도(茶道)에 대하여
- 동다송(東茶頌)을 중심으로
다전(茶田) 조석현,2003
1. 다도의 뜻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도(道)란 무엇인가? 무엇을 잘 하면 우리는 “도 텄다” “도통했다” “도사다”라는 말을 한다. 잘 한다는 뜻이다.
또한 근원을 꿰뚫고 근본인 본 고향으로 돌아간 경지를 이르기도 한다. 무릇 동양에서는 도를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절대적인 진리’를 일컬어 왔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보듯이
도(道)는 말 그대로 우리말로는 “길”이라 할까. 길은 늘 다니다 보면 나는 것이고 길은 바르고 편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길로 가야 하는 것이다. 차도로는 차가 다니고 인도로는 사람이 다니듯. 그러하듯 차(茶)는 차가 가야할 길이 있으니 차를 기르고, 따고, 만들고, 보관하고, 찻물을 준비하고, 끓이고, 우리고, 마시는 ‘길’이 있고 그 “법”(法)이 있으니 그것이 다도가 아닌가.
위의 차일[茶事] 전반에 걸친 바른 방법과 정성을 다해 하는 일이 1차적인 다도이다. 그러나 다도의 목적도 다인이 차를 마시는데 있고 이를 주관하고 일을 하는 주체가 다인이므로 다인이 가져야할 자세와 다인의 마음가짐도 다도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차가 다도를 다해 완성되듯 다인이 도인(道人)중에서도 다도인(茶道人)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이 다도의 최종 목표라 해야 할 것이다.
김명배 다인은 그의 저서 ‘다도학’에서 다도는 “찻잎따기에서 차를 우려 마시기까지 차일[茶事]로서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을 쌓는 행위”라 했다. 차의 역사에 무척 해박하였던 최계원 다인은 그의 유저 ‘우리차의 재조명’에서 “차를 끓이는 법식과 차를 마시는 데에 있어서 마음가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글쓴이는 다도를 “좋은 차를 만드는 법이요 좋은 차를 마시는 일이요 진정한 다인으로 완성되는 길”이다고 정의하고 싶다. 좀더 간략히 한다면 다도를 객(客)과 주(主)로 나누어 “차일의 바른 법이요 다인의 바른 길”(茶事之正法 茶人之正道)로 말하고 싶다. 여기서 “바른”[正]의 부분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상당부분 중정(中正)으로 “중”(中)과 정성(精誠)의 “정”(精)과 통한다.
요즈음처럼 분화된 현대에서 차일의 주요한 일은 위 다인들이 말한대로 차를 우려 마시는 일이 중심이 되겠지만 다도의 정의에서 차일[茶事]은 좀더 광범위하게 차를 마시기 위한 모든 다인의 행위로 보아야 하겠다. 물론 차를 마시는 사람이 위의 모든 일을 다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차일 중 어느 하나를 하든 바른 방법으로 정성을 다해야 다도를 다했다 할 것이다.
다인은 차를 마시는 사람이요 차일을 하는 사람이라 차일이 객체라면 차사람[茶人]은 주체다. 차일과 다인은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어 이것이 있다”라는 불가(佛家)의 연기(緣起)처럼 서로 의존하여 존재하고 있으며 함께 할 때 그 뜻이 있다.
자연적으로 차나무가 있어 봄이면 차눈을 틔우고 가을이면 맑은 하늘에 청초한 차꽃을 피운들 그것을 사람이 쓰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사람만 있고 차가 없다면 다인도 나투지 않으리.
세상이 음양조화로 이루어지듯 다도도 차와 사람이 어울려야 나오고 차일도 생기고 차정신도 나온다 하겠다. 다도를 우리 고유의 우주관, 인생관인 천지인(天地人)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茶道 茶--------(茶)事-------(茶)人
三才 (地) (人) (天)
主客 客.................<和>............... 主
陰陽 陰 中 陽
2. 초의(草衣)의 중부(中孚)
우리나라 다도를 가장 잘 정의한 우리 차의 노래 동다송(東茶頌)의 저자인 초의 스님은 다산, 추사와 함께 조선 후기 3대 다인중의 한사람이다. 글쓴이는 그가 정의한 다도와 관련하여 그의 호에 주목하고자 한다. 물론 그의 호는 최계원 다인의 전게서에 의하면 다산이 지어준 것으로 밝히고 있지만 어쨌든 중부(中孚)의 호는 심상치 않다.
중부란 말은 주역의 ‘풍택중부괘’(風澤中孚卦)에 나온 괘사로서 바람이 못 위로 부는 것을 상징한다. 바람이 못 위로 불면 물이 움직인다. 물결은 물결을 낳고 못 위엔 무수한 물결이 일고 따른다. 사람의 정성은 남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마음과 마음이 닿아 감동되면 온 사람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퍼진다.
또 중부의 부(孚)는 새가 새끼 즉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라 한다. 새가 알을 품고 있을 때 그 순수하고, 경건하고, 집중된 일념, 사랑과 정성을 뜻한다.
초의는 동다송에서 “차를 만드는 데는 그 정성을 다해야 한다”(造盡其精)고 하고 있는 바, 바로 그의 호의 뜻이다. 초의 자신이 다도나 다사 또는 모든 일에 이 중부의 정신을 강조하지 않았나 하는 것을 그의 중부라는 호에서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동다송을 지은 13년 뒤 초의가 65세 때 지은 시 중에는 차를 알가(집착없는 바라밀)로 정의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차를 영산으로 가지고 와 부처님께 바치는데
끓이면서 범률(梵律)을 헤아리니
차는 알가로 무궁한 묘한 근원 지녀
집착없는 바라밀이로다.
“알가”의 알은 우리말의 알[卵]과 같으니 시원(始原), 원초(原初)라는 뜻이요, 무착바라밀은 욕심없는 수수한 참된 마음이요 지혜에 이르는 길이다. 같은 시에서 ‘차는 군자와 같아서 삿됨이 없다’(茶如君子性無邪)라고 하고 있거니와 차 자체가 갖는 순수한 성질을 군자(된사람)에 빗대고 있다. 이 순수함을 잘 드러내고 잘 지키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정성임을 두 말할 필요가 없겠다. 즉 다도에서 중부의 정신인 것이다.
3. 동다송(東茶頌)의 다도송(茶道頌)
27송(차따기)
맑은 밤이슬 흠씬 빨아들이고
삼매경 손 위에 그윽한 향기여
28송(차만들기)
중(中)의 미묘함은 드러내기 어려우니
진(眞)과 정(精)은 몸[體]과 신(神)으로 나눌 수 없네
29송(차우리기)
몸과 신이 온전해도 중정(中正)을 넘을까 두려워라
중정을 넘지 않으면 건(健)과 영(靈)을 함께 얻으리
30송(차마시기)
옥화차 한 잔 기울이니 겨드랑이 솔솔 바람
몸 가벼이 상청경 거니는 듯
31송(다도인)
밝은 달 등불 삼고 벗 삼으니
흰구름 자리 펴고 병풍친다
대숲소리 솔물결 모두 서늘하니
맑고 찬 기운 뼈에 스며 마음 깨우네
흰구름 밝은 달 두 손님 모셨으니
도인(道人)의 앉은 자리 이보다 더할까
27송부터 29송까지는 차일[茶事]의 다법(茶法)을 말한 다도이고 30송 31송은 차를 마신 뒤 다인을 말한 다도이다. 다인이 다도를 통해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진정한 다도의 의미가 있다 하겠다. 31송에서와 같이 진정한 다인은 곧 도인(道人)이고 이는 곧 다도인(茶道人)이 아닐까?
어느 길이든 바른 길을 지극하여 가면 마침내 길튼이[道通人]이 된다고 할 수 있는데, 다인은 차의 일을 통해서 묘법(妙法)과 참길을 깨우치고 또 차 자체가 바라밀에 들게하는 힘이 깃들여져 있는 상황에서 진정한 다도인은 도인이 될 수 밖에 없다고 글쓴이는 보고 있다.
차와 선정(禪定)의 부분은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글쓴이의 작은 경험으로도 분명 좋은 차를 마시고 난 다음에는 선정에 빨리 들게 하는 힘은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이 도인의 경지를 잘 말해주는 것으로는 다음 추사의 다시(茶詩)를 보자
고요히 앉은 곳, 靜坐處茶半香初
차는 반쯤 끓여
향기 처음 나고
묘한 쓰임에 妙用時水流花開
물 흐르고 꽃 피네
이 두 시를 통해 차의 멋과 여유 그리고 차를 통한 깨달음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지 않은가?
동다송 전체가 다도에 관련되지 않는 부분이 없다 하겠지만 다도송은 위의 5송이라고 볼 수 있고 특히 29송이 핵심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간결하게 다도를 직접 표현한 부분으로 29송의 주석부분 평왈(評曰) 이하 다음의 33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는 데 그 묘(妙)를 다하고 採盡其妙
만들 때 그 정(精)을 다하고 造盡其精
찻물은 그 진(眞)을 얻고 水得其眞
우림엔 그 중(中)을 얻으면 泡得其中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體與神相和
건(健)과 영(靈)이 서로 아우르니 建與靈相倂
이에 이르러 다도를 다했다 할 것이다 至此而茶道盡矣
이 곳에서 우리가 말한 다도(茶道)란 말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다사의 주요한 부분에 대해 다도의 중요한 요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사의 주요 부분 즉 채다(採茶), 조다(造茶), 찻물[茶水], 포다(泡茶)에서 주요한 핵심인 묘정진중(妙精眞中)이 그것이다.
체와 신은 물과 차를 의미하는 것은 같은 주석부분에서 “차는 물의 신이요 물은 차의 체이니 진수(眞水)가 아니면 다신(茶神)을 나타낼 수 없고, 진다(眞茶)가 아니면 수체(水體)를 나타낼 수 없다”로 보면 확실하다.
건과 영은 물의 온도, 차의 양, 우리는 시간 등이 지나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결과다. 주석에서는 다관이 너무 뜨거우면 다신이 건강치 못하고 다관이 맑으면 수성이 영(靈)하다고 말하고 있다.
위의 언급만 보면 분명 초의는 다도를 차를 마시기 직전까지 다사에 관한 부문만을 다도로 정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도 살폈듯 광의로 다도를 볼 때에는 주관적인 다인의 도(道)와 법(法) 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초의 자신도 동다송 마지막 두 송에는 차를 마시고 난 경지와 차를 마시는 자리와 마음가짐 등 다인의 자세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4. 다도해설도
용운 스님은 분재와 수석지를 통해 최초로 동다송 다도의 핵심부분을 구조적으로 해석하여 다도해설도(茶道解說圖)를 다음과 같이 완성시켜 구조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였다. 비교적 원문에 충실하게 잘 되어 있다. 차를 만들기까지의 딸 때의 묘(妙)를 다하고 만들 때 정(精)을 다하라는 이진(二盡)으로 탄생된 차를 진다(眞茶)로 묶은 부분은 별 무리가 없다. 다만 찻물과 우릴 때는 진(眞)과 중(中)을 얻으라는 이득(二得) 부분을 진수(眞水)로 묶는 부분은 구조상 문제가 있다. 물과 물에 차를 넣어 우리는 것을 같이 묶어 진수로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초의 스님은 다도의 요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찻물을 끓이는 주요한 부분은 생략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으로 본다.
용운 스님의 다도해설도
採 造 水 泡 四門
| | | |
妙 ---- 精 眞----中 四行
│ │
眞茶 --------------- 眞水
│
神 ------------------體
│ │ 四得
│ │
健 ------------------ 靈
따라서 다사의 구조적인 면을 충분히 고려하여 다사의 진행 단계별로 구조화시켜 생략된 물끓이기 부분을 살려 좀 더 정확히 동다송의 다도를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다전(茶田)의 다도해설도
(木) (火) (水) (火)
採 造 水 湯 1단계:茶水四門
| | | | 二盡二得
妙 ----精 眞 ---- 熟
│ │
│ 泡 │
精茶 ----│---- 眞水 2단계:泡中眞茶
(陽) 中 (陰) 二和二倂
│
體---- (和)-----神
│ 眞 │ 3단계:茶道之行
│ 茶 │ 茶人得道
健----- (倂)-----靈
글쓴이는 좀 더 명확히 다사를 단계별로 구분하였다. 1단계는 각각 정다(精茶:만들어진 차)와 진수(眞水)를 얻는 과정이다. 체와 신이 준비되는 것이다. 2단계는 이것들을 다관에 넣고 우리는 과정인데 이로써 체[물]와 신[차]이 하나되어 진다(眞茶:우려낸 차)가 되는 것이다. 3단계는 동다송에도 명확치 않는데 글쓴이가 추가한 부분으로 다도의 최종목표가 아닐 수 없다.
1단계의 차 부문은 차를 먼저 따고, 다음엔 불을 이용해 만든다. 그리고 물 부문은 물을 구하고, 다음에 불을 이용해 끓여 탕수를 만든다. 차를 만드는 순서나 중요성에 비추어 꼭 필요한 탕수를 만드는 과정이 이 동다송 본문에는 생략되어 있다. 물론 주석이나 다신전에는 잘 설명되어 있다. 글쓴이는 구조상 당연히 동다송 다도를 말하는 데에는 이 부분을 주석 부분에서 끌어내어 설명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같은 송인 29송의 주석에 “완전히 익은 것을 살핀 후에”(探湯純熟) 우린다는 부분을 첨가하여 다도해설도를 만들었다.
차와 물의 두 부문에 있어 두 가지를 다하고 두 가지를 얻어 정다와 진수를 만들고(1단계) 이를 중정에 맞게 잘 우리면 진다(眞茶)가 되어 체와 신이 조화[和]하고 건과 영이 아우르고[倂](2단계) 다인이 차를 마시고 다도를 행해 다인이 도를 이루는 것(3단계)로 다도해설도를 요약할 수 있겠다[茶水四門 二盡二得, 泡中眞茶 二和二倂 茶道之行 茶人得道 : 차와 물을 다루는 네 문에, 둘을 다하고 둘을 얻으라, 중정에 맞게 우리면 진다가 되리니 둘이 화합하고 둘이 따르리니, 다인은 다도를 행해 다인의 도를 이루리]
차의 역사나 차의 전반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졌던 최계원 다인의 ‘우리차의 재조명’을 보면 다도해설도에서 다신전이 정(精), 조(燥), 결(潔)을 다도로 말하고 있음을 비추어 저장에 있어 건조할 것[臧 → 燥]과 그릇은 깨끗이 할 것[器 → 潔]을 추가하고 있다. 실제로 차를 마시는 데는 차를 저장하는 문제가 생기고 차를 우려 마실 때는 반드시 그릇을 사용하는 바 이의 문제를 다도의 한 요소로 들고 있음은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다만 동다송의 제29송에서는 핵심을 논하는 데에 그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보겠다.
그리고 차와 수를 만나게 하는 데에 불[火]를 들고 있고 제일 상위의 다도 개념으로 중정(中正)을 들고 있는 점은 매우 탁견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또한 용운 스님의 4득[神體健靈]의 배열과는 달리 체와 건, 신과 영을 각각 같이 상하로 배열하고 있는 부분은 글쓴이와 같다 하겠다. 원문의 배열 순서도 그렇거니와 의미상으로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신령한 것[體⇒健, 神⇒靈]이 맞다 하겠다.
건과 영을 우려진 차의 물과 차로 해석하지 않고, 차를 마시고 난 다인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신령스러워진다라고 해석해도 그 의미상으로만 봐서는 무리는 없다. 그러나 초의는 분명 찻물에 우려진 차 자체의 상태를 뜻하고 있음은 그 주석에서 ‘다관의 물이 너무 뜨거우면 다신이 건(健)하지 못하고 다관이 깨끗하면 수성이 영(靈)해진다’ 고 함으로써 분명해진다. 즉 초의는 너무 물이 뜨거우면 차잎이 삶아져 시들해지니 이를 건강치 못한다고 했고, 다관이 깨끗하여 더러운 것이 침범하지 않고 맑아야 수성이 신령스러워진다 했다.
차를 만들 때 정성이 가장 필요하겠지만 글쓴이가 볼 때 정(精)은 딸 때나 물을 얻어 물을 끓일 때나 우려낼 때 등 다사 전반에 걸쳐 중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나아가서는 다사 이외의 일반 일도 마찬가지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중정(中正)의 중(中)은 우릴 때 가장 필요하겠지만 이것 역시 지나치지 않고 적절히 하는 지혜로서 어디나 절실히 요구되는 길이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두 축이라고 글쓴이가 생각하는 ‘사랑’과 ‘지혜’가 다름아닌 다도에서 “정”(精)과 “중”(中)이다.
글쓴이는 특히 이 중에서도 중(中)은 다음에서 역리로도 살피겠지만 가장 상위의 개념으로 다도의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중(中)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하나 동다송에서 29송 33자에는 직접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다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으로 “하나”로 통합되어 지는 것을 들 수 있다. 위의 다도에서도 진다의 결과로 4가지를 들고 있지만 이들이 화합하고 아우른다고 되어 있으니 결국 하나다. 28송에서도 진(眞)과 정(精)은 몸과 신으로 나눌 수 없다고 하여 하나임을 드러내고 있다.
무릇 어떤 도(道)나 마찬가지이지만 다도도 하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사에 있어서 차와 물이 만나 마시는 차로 하나되고 다인에 있어서도 차를 마심으로써 차의 모든 것을 흡수하여 다인속에서 하나로 거듭나서 하나로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체신합일(體神合一 : 물과 차가 만나 차가 됨)되고 이것이 다인이 마심으로써 주객일치(主客一致)가 되어 인차합일(人茶合一 : 다인과 차가 하나됨) 것이다. 다인과 차는 불이(不二)이고 곧 하나다. 어떤 사람이 진다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면 그가 바로 진다인(眞茶人)이고 진짜 다도인(茶道人)이 되는 것이다.
5. 역리(易理)로 본 동다송 다도
차는 그 성질이 삿되지 않으니 선가(禪家)에서는 다선일미(茶禪一味)로, 선가(仙家)에서는 선다일여(仙茶一如)의 경지로, 유가(儒家)에서는 역리(易理)의 이치를 깨우치는 매개체인 것이다.
이제 동양의 역리와 음양오행(陰陽五行) 등으로 새롭게 다도를 조명(照明)해 보자. 오행(五行)은 실로 수(水)의 변화이고, 수(水)는 생명을 창조하는 본원(本源)이라, 거기서 싹이 나오니 이는 목기(木氣)가 발(發)함이다. 목(木)은 수(水)가 운동하는 최초의 모습으로 양의 활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양(陽)의 활동이 점점 활발해지면 화(火)가 된다. 계절로 보면 수(水)는 겨울이고 목(木)은 봄이며 화(火)는 여름이다.
가장 기(氣)가 응고된 상태인 수(水)에서 화(火)로 까지 변하면 그 잎이 무성하고 겉은 화려하지만 그 속의 기(氣)는 이미 공허(空虛)한 지라, 차는 화기(火氣)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전 즉 목기(木氣)가 발하는 봄에 따야 한다.
차를 따는 계절은 겨울[陰]과 여름[陽]의 중간인 봄[中]이어야 하고, 그 시간도 밤[陰]과 낮[陽]의 중간인 아침[中]이다. 차를 따는 것도 일양이음(一陽二陰)을 고루 갖춘[中] 일창(一槍[陽] : 가지에서 금방 나온 움으로 제일 끝에 붙은 창모양의 잎), 이기(二旗[陰] : 창밑에 좌우로 엇갈라져 난 움이 자라 깃발 모양으로 퍼진 잎)만을 딴다. 따라서 이 엄격함을 지켜 차를 따는 것[採盡其妙]이 차의 진기(眞氣)인 중성자(中性子)를 얻는 첫걸음이다.
물론 먼저 차의 재배지도 산과 계곡의 중간인 기슭에서 적당한 햇볕과 안개와 이슬이 내리는 반음반양(半陰半陽)[中]의 토양이 요구되니, 순도높은 좋은 차를 얻는 데는 까다로운 차가 가지는 공간성(空間性)과 시간성(時間性)이 필요하다 하겠다. 차의 재배지 선택에 요구되는 것은 차가 요구하는 공간성이요 차를 딸 때 요구되는 것은 차가 요구하는 시간성이다. 이 공간성과 시간성을 잘 맞추는 것도 다도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다시 차를 제조하는 것은 차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화기(火氣)를 가해 차의 본성이 흐트러지지 않게 잘 보존하고 차의 맛이 잘 우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화(火)를 가해 차를 만들되 차를 찌거나 덖으니 삶거나 구워서는 안된다. 삶을 경우 차의 향이 박탈되고 구을 경우 향이 변질된다. 결국 삶는 경우는 수기운(水氣運)이 많은 음극화(陰極化) 현상이고 굽는 것은 화기운(火氣運)이 많은 양극화(陽極化) 현상으로 둘 다 중(中)이 아니다. 따라서 양극을 버리고 찐다든가 덖는 형태의 중간형태[中]를 사용하여 차를 제조하게 되는 것이다.
음양 : (陰) (中) (陽)
茶事 : 삶다 ← 찐다 / 덖는다 → 볶는다
水氣 : 多 中 少
火氣 : 少 中 多
이 제다법은 무척 까다롭고 중(中)을 취하면서 사랑과 정성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이 중부(中孚)의 정신이다.[造盡其精] 같은 차도 제법, 불과 물의 양, 정성에 따라 그 맛이 현격하게 달라짐은 이 중(中)을 취해 중성자를 얼마만큼 잘 얻어내느냐 하는 문제다.
창(槍)은 처음에는 달고 끝은 떫고, 기(旗)는 처음에는 쓰고 끝에는 단 데, 떫고 쓴맛을 제거한다는 것은 이 창과 기를 배합하여 중성자의 참 맛을 뽑는 것이다. 달고 향기롭고 무겁고 부드러운 맛은 최상의 맛으로 진다(眞茶)의 맛이며, 진향(眞香)이 가득하고 차를 달여낸 빛이 순백(純白)이면 최상의 차다.
순백(純白)은 바로 중성자(中性子)의 색이다. 청백(靑白)으로 푸르스름한 것은 목기(木氣)를 지닌 것으로 그 다음이고, 황백색(黃白色)을 그 다음으로 친다. 화기(火氣)가 너무 지나치거나 변질된 것은 적색(赤色)을 띠는데 이러한 차는 오히려 몸에 해롭다.
차를 만드는 것은 수생목(水生木)으로 생(生)한 기운을 화(火)로 성숙 발전시킨 후 금(金)의 기운으로 수렴시켜 내장시키는 일이다. 우리가 생차잎을 그대로 먹지 않고 차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음은 바로 금화상쟁(金火相爭)을 위대한 미토(未土)의 중화작용, 토화작용(土化作用)을 거쳐 금기(金氣)로 외형을 수렴하고 수기(水氣)로 완전히 응고시켜 갈무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木)에 직접 화(火)를 대면 타고 말지만 금(金 : 솥)에다 수(水)가 작용하면 차를 만들어 갈무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차를 만들 때 솥에서 덖어 펴진 잎을 말았다 다시 덖는 것을 반복하니 그야말로 확장[陽] 수축[陰] 등 음양운동을 거듭하는 것이다. 손 등으로 차를 말면서 압력을 가하면 금(金)의 기운을 받아 줄어들고 다시 차잎을 불에 덖으면 화(火)는 양(陽)이므로 솥속에서 잎이 펴지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하면서 수기(水氣)가 거의 다 제거되고 순수한 차의 기운 즉 목기(木氣)를 갈무리하는 것이다.
오행(五行)의 원리상 화기(火氣)를 계속 가하면 수화상극작용(水火相克作用)으로 차의 목기(木氣)[이것도 수(水)와 화(火)의 중간[中]의 생기(生氣)]속에 함유된 수기(水氣)가 날아가 파삭파삭할 정도로 차가 만들어진다. 이 정다(精茶)가 진수(眞水)를 만나면 진다(眞茶)가 나오니 원래의 차잎에 갈무리된 차 성분이 고스란히 물속에 침출되어 나오는 것이다.
우리 인류가 이렇듯 과학적인 오행의 원리를 이용해 차를 만들어 차의 성분을 물로 흡수하여 마신 것이다. 우리 몸의 70%가 물이고 이렇듯 찻물을 마심으로써 효과적으로 차의 성분을 흡수했다고 볼 수 있다.
생차의 성분이 차속에서 오래도록 그렇게 살아 있다가 차를 우려 마실 때면 다관에서 생잎처럼 푸르르게 살아나고 그 성분이 남아있다 우러 나오는 것이, 춘하추동(春夏秋冬) 계절의 계절의 움직임과 목화토금수목(木→火→土→金→水→木) 오행(五行)의 움직임과 같으니 어찌 심오한 역리(易理)가 차속에 없다하리.
차의 원 기운은 목기(木氣)이고 이는 봄의 기운이요 생명의 기운이다. 이 차가 제조과정에서 불의 기운 등을 받아 차의 목기(木氣)가 표출되고 수(水)의 기운을 최대한 증발시켜 건조함을 유지하여 보관된다. 그러한 차가 다시 수기(水氣)를 받으면 즉, 찻물에 화기(火氣)를 충분히 가해 양성(陽性)의 물[잘 익은 탕수(湯水)]에 우리면 본래 차가 가지고 있는 목기(木氣)가 물에 우러 나오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물량으로 보면 대다수를 차지하는 물의 위치가 차 이상으로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 차의 신(神)은 그 몸에 해당하는 물[水]을 제대로 만나야 생명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진짜배기 물을 얻는 것이 좋은 차를 얻는 것 만큼 중요하다 [水得其眞]
마치 한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 일양(一陽 : 精子)이 음수(陰水 : 卵子)를 만나 수정을 해야 하듯.
父(精子) 受精 母(卵子)
精茶 泡 물
一陽 ----------+----------- 陰水
(陽) (中) (陰)
↓
차
子
그래서 동다송에서는 차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의 체(體)이니 진수(眞水)가 아니면 그 신(神)이 드러날 수 없고, 진다(眞茶)가 아니면 그 체(體)를 알아 볼 수 없다. 마치 건전한 육체[水]에 건전한 정신[茶]이 깃든다고나 할까? 역으로 차가 좋아야 그 물도 의미가 있다. 결국은 하나다.
그런데 차의 성분을 충분히 우려 내기 위해서는 음수(陰水)이어서는 안되고 양수(陽水)이어야 한다. 그래서 진수(眞水)에 불을 충분히 가해 물을 익혀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불기운이 모자라도 안되고 불기운을 너무 많이 넣어도 안된다. 그러므로 물 익은 것을 잘 살펴서 탕수(湯水)를 만들라 했으니 동다송 29송 주석에는 이를 “탕수가 잘 익은 것을 살핀다”[探湯純熟]라고 하고 있다.
차를 우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중(中)을 얻는 것이니 음(陰)이나 양(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남녀화합도 마찬가지이고 세상사 모든 것이 균형이 맞아야 하고 기울어지는 것은 결국 바람직하지 못하다. 차가 많거나 물이 많거나, 차가 적거나 물이 적어서도 안되고, 그 우리는 시간이 길거나 짧아서도 안되고, 물의 온도가 너무 뜨겁거나 차서도 안된다.
차와 물의 양, 물의 온도, 그리고 우리는 시간 등은 마치 우리의 우주가 그렇듯 4차원(차, 물, 온도, 시간)의 시간과 공간이 서로 상대적으로 얽혀 있다.
시공간(우주) : ------ 공간 ------- ***시간***
차 원 : 1차원 2차원 3차원 4차원
다 사 : 차 물 온도 시간
음 양 : (양) (음) (양) (양)
여기서 차를 내는데 위의 내 요소중 차를 진하게 하는 요소를 양(陽), 묽게하는 요소는 음(陰)으로 보면 위와 같다. 차가 많고(물이 적고) 온도가 높고 시간이 길면 차는 많이 우려져서 쓰거나 떫게 된다[陽] 반대로 물이 많고(차가 적고) 온도가 낮고 시간이 짧으면 잘 우려지지 않으니 심심하다[陰] 다인들 중 특히 응송 스님같은 분은 좀 짜게 마셨는데 이는 양(陽)으로 치우쳐 우리는 까닭이다. 그 중(中)이 중요하나 다인들에 따라서는 조금씩 차이는 있다고 하겠다.
이 세상에서 4차원의 삶을 잘 살아야 영적인 성장이 있듯 다도(茶道)에 있어서도 이 4차원 요소를 잘 조절하여 현묘한 하나를 얻는 중정(中正)이야말로 진다(眞茶)를 얻는 마지막 관문이다 [泡得其中]
이 과정도 둘이 하나되는 과정이다. 차와 물이 만나 마실 수 있는 차가 탄생되는 것이다. 이로써 체(體 : 물)와 신(神 : 차)이 서로 화합하여 건(健)과 영(靈)이 따름은 마시는 차로서 완성됨을 보여주는 것임은 앞에서도 살폈다. 이로써 다도를 다했다고 초의도 말하고 있으나 진정한 다도는 이제 겨우 객관적인 것, 차가 완성되는 것일 뿐이라 글쓴이는 생각한다. 즉 다인이 진다(眞茶)를 마심으로써 또 다사를 통해 다도를 완성했듯 스스로를 완성했을 때 진정한 다도인으로서 다도를 다했다고 하지 않을까?
즉 차를 마심으로써 또 다도를 통하여 몸과 마음의 본성인 건(健)과 영(靈)을 찾아 깨달음[覺]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차라는 객체를 받아들이면서 주체는 다시 하나로 되는 것이다.
精茶 ------------ 眞水 人 三才
(天) │ (地) (人)
↓ ↓
眞茶 -------------------茶人 二極
[客] ↓ [主]
道 唯一
【一】
다도에서 다인의 문제를 빠뜨리는 것은 완전한 다도를 설명했다고 볼 수 없다고 글쓴이는 본다. 그러면 다인의 도는 어떻게 완성될 것인가? 그것은 이외로 간단하다. 진정한 진다를 만드는 정신과 정성, 그리고 중정 등이 그대로 다인에게 있으면 된다. 다도인은 어디까지나 다도와 다사를 통해 진정한 다도인 또는 도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茶道之行 茶人得道]
차를 마시는 주체인 다인이 진다의 수준까지 이르러야 한다. 차의 천(天)이며 양(陽)이며 신(神)이 정다(精茶)이듯 다인의 그것은 마음[心]이요 영(靈)이다. 그리고 지(地)이며 음(陰)이며 체(體)인 진수(眞水)는 다인의 몸에 해당하는 것이다. 차에서 차와 물을 하나로 해서 진다를 만들 듯 다인은 다인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하여 도에 이르른다 하겠다.
결국 이는 하늘의 성분을 가장 많이 함유한 영초(靈草)인 차를 통해 다인이 하늘을 닮아 궁극적으로 하늘로 돌아감[歸天]을 말한다. 차는 분명 하늘이 인간에 내린 선물이다. 본 고향인 하늘을 찾아오라고 하늘의 풀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차, 차하는 것이며, 차의 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지구별에 내려왔으면 “끽다거"(喫茶去 :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는)하는 것이다. 끝
- 이전글「보성 차밭밑엔 특별한 차문화가 있다」 출간 21.03.09
- 다음글묘(妙)와 정(精) 담긴 한국차(韓國茶) 21.03.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