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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인 이야기
❆ 차명상과 다인
(1)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 水流花開 ]
작자가 알려지지 않는, 추사가 쓴 ‘다반향초(茶半香初)'의 차시가 있습니다. 선다일미(禪茶一味) 대표시라 하면서 가장 해석이 어려웠던 ‘다반향초'는 '반쯤 끓여 차향 처음 나고'로 해석된다. 떡차 등을 끓여 마실 때 차를 끓이는 가운데 처음으로 차향기가 퍼진 것을 노래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차를 마신 뒤 차인의 깨달음의 경지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식의 선문답 식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시는 차와 같이 진실하고 실재함이니 허구를 노래하거나 막연히 노래하지 않습니다. 다정에서 실제 차를 마시고 보니 물이 흐르고 꽃은 핍니다. 새로운 세상이 다인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다각(茶覺 : 차를 마시고난 깨침)의 경지입니다.
차생활과 차명상의 경지를 이처럼 못지게 표현한 차시도 드물다 하겠다.이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별도로 다반향초 차시에 대한 연구에서 상술한다.
정좌의 곳, 靜坐處茶半香初
차는 반이고 향은 처음
묘용의 때, 妙用時水流花開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2) 차 맛과 향의 여운
진정한 차 맛은 차를 마시고 난 뒤인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없을 때 빛나듯. 사귀고 헤어진 뒤 그 사람의 향기가 남듯. 차도 마시고 난 뒤 향기가 오래도록 남은 차가 좋은 차입니다. 같은 차도 또 묘용을 잘 쓰면 여운도 길게 갑니다.
차를 다 우리고 난 다음 찻잔에 맹물을 담아 맹물차를 마십니다. 마치 녹차를 마시듯 단맛이 느껴집니다. 이것은 찻잔에 남아 있는 것이 있거나 우려지는 성분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고루 혀굴리기 등으로 혀의 미뢰(味蕾)에 침착된 차의 성분이 물이 닿아 또 단맛이 살아난 것입니다. 사실 침이 나올 때마다 단맛은 계속 돕니다. 이 단맛을 오래 유지시키려면 가능한 어떤 것도 안 먹으면 좋습니다.
단지 물만 조금씩 적시고 의식을 입안에 집중하여 단침이 계속 나오게 합니다. 단맛이 생기고 느끼고 사라지고 다시 사라지는 것을 그냥 물끄러니 남 대하듯 봅니다. 단맛이 더 생기게 하거나 지속되게 하려는 시도도 버려야 합니다. 그냥 목이 마르면 조금 물을 마십니다. 그리고 그 의도를 알아 차리고 물을 마심을 압니다. 또 혀 안에서 더 밋밋한 여린 단맛이 도는 것을 알아 차림니다. 찰나에 주의집중으로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선정의 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단침이 고이고 단맛과 미묘한 향기는 계속됩니다. 때로는 담백한 식사를 하고 나서도 감칠맛과 형이 없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은 가능한 식사를 늦게 할 때 그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반나절 심지어는 하룻동안 단맛과 묘향(妙香)이 돈 적이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두 경우다 햅차[新茶]였습니다. 한 번은 차 산지였고 한 번은 사무실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수돗물로 마셨기에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이러한 상태는 좋은 차를 묘용을 부려 잘 마시는 것도 있지만 녹차를 마시는 녹차인 자신의 건강과 신령함도 매우 중요합니다. 차와 물과 사람 이 천지인(天地人)이 잘 부합된 묘합(妙合)의 산물이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다시금 묘용으로 입안의 묘락(妙樂)을 느끼며 노래 한 자락을 불러 봅니다.
녹차 묘락 綠茶妙樂
구름 밟고 이슬 마신 건령한 풀 雲踏吸露健靈草
진수 좋은 짝에 알맞게 우리네 好配眞水中正泡
혀 굴려 남은 향 묘하게 즐기니 轉舌餘香妙樂中
꽃 희고 잎 푸른 곳 이 곳이로다 華素葉綠此內所
(3) 차를 통한 위빠사나 명상
우리는 누구나 기대어 쉴 수 있는 진실하고 아름답고 선한 것[眞善美]이 필요합니다. 모든 변화하는 것은 무상하고 안식을 줄 수 없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가질 수 없습니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깨어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차를 마시고 있고 물을 마시고 있을 때 그것을 알면서 마시는 것이 깨어 있음입니다.
우리는 많은 행동과 말을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행합니다. 그것이 무엇인 지도 모르면서 그냥 하는 것 뿐입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몽롱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자신이 그런 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하여 부산히 움직입니다. 마음은 늘 들 떠 있고 눈은 밖으로만 향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자각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풀의 성현(聖賢), 풀의 영초(靈草)인 차는 그 자신의 높은 영성으로 우리를 “깨어나라” 호통칩니다. 주의를 가지고 깨어 있으라 합니다. 조용하게 내면의 세계에 몰입하라 합니다. 또한 더 높은 정신적인 세계로 나아가라 합니다. 나와 같이 건강하고 신령스러워져라 합니다[健靈] 더러움에 물들면 맛을 버리니 항상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살라 합니다. 스스로 음습한 것에 젖어 들면 안 되는 것을 보여 주면서 항상 나쁜 습관에 젖어들지 말라 합니다. 끊임없이 향기를 내 뿜으며 향기나는 삶을 살아라 합니다. 참된 성품을 발휘하기 위해서 주의를 다해 찻일을 하라 합니다. 법도에 맞게 하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레 하라 합니다. 늘 반음반양을 스스로 지키며 치우치지 말라 합니다. 찻일을 할 때 때맞춤을 잘하고 정성을 다하라 합니다. 그리고 차와 물이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中正] 어울리고 화합하여 진다가 되듯 서로 사랑하고[相和] 서로 살려주어[相生] 더 높은 단계로 함께 나아가라[和進]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녹차는 깨닫고 자각하게 합니다. 고요히 가만가만 자신을 성찰하고 명상하라 합니다. 순일하게 정신을 집중하고 다사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알아차리고 행동하라 합니다. 차를 따를 때 정신집중을 하고 차를 마실 때 온 감각을 동원하여 하나하나 알아 차림니다. 자각하지 않으면 깨어 있지 않으면 진정한 다도를 다할 수 없습니다. 다도와 선은 그런 면에서 비슷합니다.
찻잔을 감싸 쥐고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숨쉬기를 가다듬습니다. 손바닥이 따뜻합니다. 손목을 거쳐 팔로 따스함이 전해집니다. 따스함은 가슴으로 전해 옵니다. 훈훈한 정이 따스합니다. 감사함이 느껴집니다. 이 따스함은 어머니 체온과 같습니다. 본 고향의 햇볕과 같습니다. 이 순간이 행복합니다.
눈을 가만히 뜹니다. 감싸진 손에 든 찻잔이 보입니다. 연초록빛은 맑고 영롱합니다.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빛깔입니다. 맑고 투명하여 자신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내 자신의 빛도 저렇게 맑고 투명하게 빛납니다. 그 빛을 점점 확대해 나갑니다. 찻잔의 맑은 빛이 작은 연못으로 빛이 커집니다. 이제 잔잔한 호수가 맑고 투명한 빛으로 가득 찹니다. 이윽고 온 바다가 빛으로 가득찹니다, 내 마음의 본성도 원래 빛이었습니다. 맑고 투명하고 한없는 빛으로 가득 싸여 있습니다 빛은 온 몸을 휘감습니다. 온 맘도 빛으로 가득 찹니다. 몸과 맘과 빛이 하나가 됩니다. 모두가 한빛으로 됩니다 그 빛마저 텅 비어 버립니다.
다음은 차 향기를 맡습니다. 코와 입안에 향기가 그득 합니다 차 향기가 코를 통과하여 깊숙이 들어 옵니다. 몸 속 곳곳에 스밉니다. 몸의 더러운 냄새를 지웁니다. 마음의 냄새를 지웁니다. 온 몸속에 향기가 가득합니다. 몸 밖에서 향기가 몸을 감싸 안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차향기를 투과시켜 모든 탁한 냄새, 악취를 몰아냅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인한 냄새를 제거합니다. 이기심으로 인한 차고 냉한 기운을 몰아냅니다. 이제 몸 안에서 향기가 납니다. 마음이 깨끗해져 꽃향기가 납니다. 생각이 건전해 지고 사랑이 가득 차서 향기롭습니다.
그 다음은 차 맛을 느낍니다. 차 맛의 변화를 압니다. 처음과 중간과 나중의 맛의 변화를 압니다. 그 때마다 하나도 같은 맛이 없습니다. 같은 찻물도 머금고 혀를 굴릴 때마다 다릅니다. 예리하게 차 맛의 변화를 집중하면 어느 순간 차 맛이 사라짐을 알게 됩니다. 순간 사라지고 다시 생겨 납니다. 덧없음[無常]을 자각합니다. 시간적으로 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공간적으로도 똑 같은 것은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곧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영속적으로 나라고 주장할 그 무엇도 없습니다. 변치 않는 주인이 따로 있지 아니합니다. 무아(無我)입니다. 이 맛도 단지 기대어 일어나는 것일 뿐입니다. 차가 없으면 맛도 없습니다. 혀가 없다면 느끼지 못합니다. 내가 지금 혀를 굴려서 단지 나타났을 뿐입니다. 언제나 머물지 않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주의깊음과 각성을 점점 더 높여 나갑니다. 하나하나 더 알아차려집니다. 희열이 따릅니다. 평온이 옵니다. 모든 찻일을 수도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행위가 그 자체가 선(禪)이 됩니다. 집중[사마티]과 알아차림[위빠사나]으로 찻일을 하나하나 정성으로 합니다. 처음엔 알아차림이 늦으므로 좀 천천히 합니다. 집중을 하면 싱그러워 지고 잡념이 사라집니다. 입안에 단침이 고입니다. 머릿골이 열려 기운이 드나듬이 느껴집니다. 차를 마시고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면 더욱 또렷이 움직입니다. 정[집중] 혜[알아차림]가 바른 집중[正定]과 바른 알아차림[正念]으로 자랍니다. 정혜쌍수(定慧雙修)로 신령스러워 집니다. 자비와 사랑이 나옵니다.
차일뿐만 아니라 다른 하나하나의 행위가 의식적인 알아차림으로 각성을 더해 갑니다. 모든 생활과 생각 말들이 조화롭고 부드러우며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오늘도 똑같은 해가 뜨고 시냇물이 흘러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온통 나에게는 찬란한 빛으로 다가오는 광명세계입니다.
(4) 웰빙 녹차인
녹차는 커피, 코코아와 함께 세계인이 즐기는 3대 음료중의 하나인데 건강효과까지 뛰어난 이상적인 음료입니다. 건강은 육체와 정신 그리고 사회적으로 건강해야 정말 건강한데 녹차는 모두 다 그 이바지한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좋은 차는 육체에는 건(健), 정신에는 영(靈), 사회에는 화(和)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이 높은 수준의 신령한 기운이나 효능을 얻고자 한다면 차를 만들고 마셔서 체화될 때까지 온 우주 즉 ‘하늘과 땅과 사람’[天地人]의 조화와 노력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사람 곧 “녹차인(綠茶人)”입니다. 차 한 잔에 중생대 페름기 이후 수 억년간 이어온 하늘의 공[天功]과 수 천만년 이 땅의 지령(地靈)이 녹아 있습니다. 법도에 맞게 정성을 다해 기르고 만들고 우리고 마시기까지 다도를 다했을 때 그 보상으로 녹차의 신묘한 기운을 다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어렵고 까다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처음에 알고 행하기는 조금 힘이 들지만 점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고 저절로 기품이 배입니다. 그래서 좀 더 건강해지고 좀더 신령스러워져 진정한 건강인으로 한 발짝씩 나가면 그것이 바로 다도(茶道)에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녹차인은 다도를 행한 행하는 사람이고 다도는 1차적으로 차일[茶事]를 정성스럽게 바르게 하는 사람이며, 2차적으로는 그 목적인 다인의 바른 길을 행하는 일입니다. 차일은 좋은 차를 만들고 마시는 전 과정인데 지금은 주로 차를 마시는 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차를 기르고 만드는 생산자나 좋은 차를 나누는 유통자의 일은 관심을 가지고 알면서 자신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그 선택의 기준은 녹차인이 세워 가는 것입니다.
첫째는 건강을 위한 차인데 건강을 해치는 어떤 요인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는 가능한 차의 원래 품성을 그대로 간직한 차입니다.
셋째로는 마시는 목적에 적합한 차여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좋은 녹차가 손에 들어 왔고 물과 불을 얻어 우려지지까지 했다면 이제는 녹차인입니다. 이 진다(眞茶)가 녹차인과 합일을 거쳐 진다인(眞茶人)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녹차인의 문제입니다. 녹차를 마시는 자세와 마음가짐 그리고 주의깊은 하나하나의 행위와 알아차림은 하나의 열쇠를 제공할 것입니다. 차의 고유한 효능과 그 신묘함은 돋보기가 햇빛을 모으듯 정념(正念)으로 집중하면 그 효과는 극대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녹차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차를 알고 차를 즐기는 일[요차락(樂茶樂)]이 인생의 중요한 즐거움으로 자리 잡으면 육체와 정신 모든 면에서 건강해지고 신령스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녹차인은 녹차의 빛과 향기로 맑고 푸르게 살면서 서로 사랑하며 바르게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녹차인 綠茶人
차색처럼 푸르게 茶色茶香如一生
차향기로 살지니
건강히 신령하게 健靈和進綠茶人
어울려 나아가세
(5) 우리 ‘한차’의 다도
☼ 동다송 다도
초의(艸衣)스님의 동다송 다도 노래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딸 때 그 묘(妙)를 다하고 採盡其妙
만들 때 그 정(精)을 다하고 造盡其精
물은 그 진(眞)을 얻고서 水得其眞
우릴 땐 그 중(中)을 얻으라 泡得其中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서 體與神相和
건(健)과 영(靈)이 서로 아우르니 健與靈相倂
이에 이르러 다도를 다했다 하리라 至此而茶道盡矣
☼ 다전(茶田)의 다도[“健靈和進” 사상]
위에서 초의는 차가 완성됨을 다도를 다했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머지 반 오히려 녹차인의 자신의 다도에 주목합니다. 주인이 되는 녹차인이 녹차의 건령을 받아 자신이 건강하고 신령스러워집니다. 나아가서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며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곧 신체적[健], 정신적[靈],사회적 건강[和]을 이루고 진보[進]하는 것입니다.
차와 물을 다루는데 茶水四門
때맞춤, 정성을 다하고 참 순수와 잘 익음을 얻으라 妙精眞熟
중정으로 우리면 진다되리니 泡中眞茶
차와 물이 건강하고 신령스러워라 體神健靈
차를 마시며 다도에 이르니 啜茶至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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